2023.06.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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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다시 읽기] 김현정 1집 < Legend >
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스스로를, 그것도 처음부터 '전설'이라 칭한다는 자부심.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상당히 공격적인 출사표다. 그럼에도 이 도발적인 타이틀의 데뷔작 < Legend >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를 대표하는 댄스 가수 김현정에 대한 보증이자 확신이었다.
출발이 매끄럽진 않았다. 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97년 야심 차게 등장했지만 10대 아이돌 그룹에 필적하기엔 스타일링이 다소 촌스러웠고, 방송 출연과 같은 홍보 또한 소극적으로 진행해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정난을 겪던 소속사까지 도산한 탓에 김현정은 음악 활동 자체를 중단하고 보컬 강사, 코러스와 같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다
▲ 가수 김현정 1집 < Legend > 앨범. ⓒ 카오엔터테인먼트
금세 불길이 사그라드나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장소에 흩뿌려진 불씨가 그 기세를 뒤집었다. 타이틀곡 '그녀와의 이별'은 빠른 비트감과 서정적인 멜로디를 앞세운 덕에 당대 댄스 음악을 책임지던 나이트클럽 DJ들의 선곡표에 오를 수 있었고, 밤무대 인기에 힘입어 길거리에서 성행하던 불법 복제 테이프까지 높은 판매량을 보였다. 전파(電波)를 타지 않고 순수 입소문으로 퍼졌으며 시각이 아닌 청각, 즉 음악 본연의 매력으로 대중을 강타한 것이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새 레이블과 계약한 김현정은 1년 뒤인 1998년 기존 1집을 < Shocking >이란 이름으로 바꿔 재발매했다. 급하게 후속작을 선보이기보다 이전에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던 본인의 역량을 이 기회에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 표명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도드라진 건 외적인 변신. 헤어짐에 덤덤한 듯하면서도 미련이 남은 화자의 감성을 적절히 드러내기 위해 곱슬기 가득했던 단발머리는 생머리로 펴 내렸고, 댄스 트랙의 핵심인 안무도 여성 댄서들과 함께 팔다리를 크게 쓰며 훤칠한 신체 조건이 돋보이도록 다듬었다. 특히 팔을 번갈아 가며 위아래로 흐느적거리는 포인트 동작은 간결함과 중독성을 동시에 챙기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관객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밴드 보컬리스트로 활약했던 김현정
▲ 가수 김현정(자료사진, 2009.11.26). ⓒ 연합뉴스